모세의 놋뱀사건

모세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인물중 한사람으로 출충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모세가 하나님에게 받은 능력으로 홍해를 가르자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을 밟고 이집트를 탈출한다. 그 후 그들은 광야 생활을 하게 되는데 광야 생활중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게되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뱀에 물려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에게 몰려가 “우리가 하나님과 당신에게 원망하는 범죄를 저질렀으니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물러가게 해주시오” 하고 부탁 하였다. 그 부탁을 듣고 모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어 주시며 뱀를 만들어 장대위에 매달아 물린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모세는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매달았고 뱀에게 물린자들은 그 장대에 매달린 뱀을 쳐다보고 낳게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지금으로 부터 약 3,500년 전인 기원전 15세기 경이다. 그동안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그런 사건이 일어 났었구나 하고 이해는 했지만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얼마 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하여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명백하게 확인할수 있는 한 성경 구절을 발견하였다. 그 구절은 열왕기하에 나오는 구절로 유다 14대 왕 히스기야 왕의 행적과 관련된 다음의 말씀이다:

“그는 산당을 헐고 돌기둥의 우상을 깨어뜨리며 아세라 여신상을 찍어 버리고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때까지도 모세가 만든 놋뱀을 향해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숴 ‘느후스단’이라고 불렀다 (열왕기하 18:4절, 현대인의 성경 인용)”.

히스기야가 통치하던 시기는 기원전 715년 부터 686년 사이인데 모세가 놋뱀을 만든후 800여년이 지난 이때까지도 그 놋뱀이 전해 내려 왔다는 것은 이 사건이 신화가 아닌 실재로 일어난 사건임을 명백하게 나타낸다. 또한 이 사건이 실재로 일어난것과 같이 홍해를 가른 사건,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던 사건 등 구약의 많은 기적들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이 더욱 더 실감나게 느끼지게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의 행적을 바로 눈앞에 보듯이 그려지게 하는 성경이 바로 요한복음이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자신을 요한이라고 밝히지 않고 제자라고 부르는데 예를 들면 “베드로가 돌아다보니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의 품에 기대 누워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굽니까?’ 하고 묻던 제자였다” (요한복음 21장 20절).

그런데 요한복음 후반부인 21장 23절을 보면 "이 일을 증거하고 기록한 사람이 바로 그 제자이다" 라고 하면서 간접적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 요한복음은 다른 공관복음들 보다 예수님의 행적을 눈앞에서 보듯이 생생한 문체로 잘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기독교의 핵심인 하나님의 사랑을 다음 한 구절로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무척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마저 보내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요한복음 3 장 16절).

이 구절은 우리가 연약하여 말할수 없는 많은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바라보면 우리의 죄가 용서된다고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의 놋뱀 사건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심오한 공통점이 들어 있음을 알게된다. 뱀에 물렸는데 놋으로 만든 뱀을 쳐다보면 육체가 나음을 입듯이 우리의 욕심으로 지은죄 그리고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해결 할수가 없는 죄악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았을때 말끔이 씻어지고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그것이다.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고 그래서 그 십자가를 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이 찢어지고 아프지만 그런 십자가를 쳐다 보아야만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을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십자가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함축되어 있고 그것이 바로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으로 요약된다. 이런 사랑의 하나님을 한번 만나보지 않으련가? 또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세상이 용서해 줄 수 없는 나의 죄를 용서받고 싶지 않은가? 오늘 하루는 인생의 많은 나날 중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하루가 아니라 영적으로 큰 변화를 받는 의미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