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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설계론의 역사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활수 있게 환경 적응력을 DNA에 숨겨 놓으셨다. 생존 환경이 변화되면 DNA에 숨겨져 있던 유전형질이 발현되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수 있도록 생명체의 신체구조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다읜 진화론의 결정적 오류는 이 환경 적응력을 소진화로 잘못 해석한 것이며 소진화가 적립되어 대진화가 일어난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한 것이다. 만일 다윈이 DNA의 존재를 알고 그 DNA가 환경 변화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알았더라면 종의 기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적설계 이론(Intelligent Design)의 기원은 진화론이 나오기 약 50년전인 19세기 초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의 시계공 논증으로 거슬러 올라갈수 있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들판에서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경우 그 시계는 지성의 산물이고 제작자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걸 알수가 있다. 또한 우리는 그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으며 그 제작법을 알고 있고 그것의 용도를 설계했다는걸 알수가 있다.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당시 복잡한 기계의 대표격인 시계를 가지고 그 복잡성을 생명의 복잡성과 비교하면서 생명이 설계되었음을 역설한 페일리의 논증은 대표적인 최초의 설계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지적설계에 대한 본격적인 논증이 시작된건 1966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위스타 회의(Wistar Institute Symposium)다. 이 회의는 '진화의 신다윈주의 해석에 대한 수학적 도전 (Mathematical Challenges to the Neo-Darwinian Interpretation of Evolution)'이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진화론이 수학적으로 불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이 회의에서 수학자중의 한 사람인 MIT의 머레이 이든(Murray Eden)은 진화론의 기초 이론인 '무작위적 선택(random selection)'에 의한 생명체의 시작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며 따라서 무작위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단 하나 '설계'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적능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고안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후, 1980년 10월에 당대를 주도하는 진화론자들에 의해 진화론에 관한 특별회의가 시카고에서 개최되었다. 1980년 11월 3일자 뉴스위크 지는 시카고 회의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회의에 참석한 진화론자들 대부분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설에 관한 신다윈니즘의 구조는 더 이상 과학적으로 인정되거나,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또한 생물의 기원과 다양성에 대해서도 진화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적설계에 대한 여러 책들이 출판되기 시작하는데 주목할만한 책들의 목록을 보면 1989년 화학진화를 연구한 저명한 과학자인 딘 케년(Dean Kenyon)과 퍼시발 데이비스(Percival Davis)의 「판다와 사람들」(Of Pandas and People), 1991년에 필립 존슨(Phillip E. Johnson)의 「심판대 위의 다윈」(Darwin on Trial), 1996년 미국의 리하이 대학의 생화학 교수인 마이클 베히(Michael Behe)의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 그리고 1998년 윌리엄 뎀스키의 「설계 추론」(The Design Inference) 등이 있다.

창조론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반격은 거의 맹목적이라고 할수있다. 따라서 지적설계론자들은 진화론자들의 공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직접적으로 창조론을 언급하지 않지만 뒤돌아 보면 궁극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아야 된다. 따라서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지적설계가 창조론의 완곡한 표현이라고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면 다음 장에서는 지적설계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몇가지 책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