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원하시는 삶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특히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서 드는 의문중의 하나이다. 믿는 자로써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바탕으로 하루하루 바르게 잘 살아 간다면 주님께서는 기쁘하실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고 또한 누가 보아도 나쁜 일들을 자행하고 살아간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실까?

이런 이유로 하여 주님께서는 영혼의 양식인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속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삶의 기준을 제시해 주셨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말씀을 접해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님께서 어떻게 하실까? 지은 죄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신다면 아마 이 세상에서 온전하게 살아갈 사람이 드물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주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언젠가는 주님의 품에 돌아올때까지 기다려 주신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이런 저런 체널을 통하여 주님전에 나올것을 많이 권고 받았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전지 전능하신분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또한 그분에게 인생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가슴속 깊이 내재해 있으리라고 본다. 이런 이끌림으로 인해 그런 권고를 받았을때 주저없이 주님전에 나와 주님을 만난것이 나의 인생 여정에 있어 가장 잘하였던 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군대를 가야 하는데 가지 안았다면 그때부터 병역기피자 로서의 불안한 삶이 시작된다. 하지만 한번은 가야되는 군대를 기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같다왔다면 그 이후부터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 대한민국에서 살아갈수있다. 마찬가지로 언젠가 한번은 만나야되는 주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알게 모르게 불안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지만 마음의 결정을 하고 주님전에 나와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다면 그후 부터는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수 있다.

가끔씩 주님전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현재 자기 자신이 주님전에 나가기에 부끄럽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아무리 이 세상에서 나쁜짓을 하고 주님전에 나올 자격이 없이 살아가더라도 주님전에 나오면 다 받아주시고 위로해 주신다고 하셨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 3절에서 15장 7절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가페 쉬운성경역):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잃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판에 남겨 두고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닐 것이 아니냐?
5. 그리고 양을 찾으면 양을 어깨에 메고 기뻐할 것이다.
6.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말할 것이다. ‘함께 기뻐하자. 잃었던 양을 찾았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 없는 아흔아홉 명의 의인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명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것 같이 누가 보아도 안타깝고 나쁜일을 저지르는 악한 사람들이 주님앞에 회개하고 돌아 온다면 주님께서는 잃었던 양을 찾으신것 처럼 크게 기뻐하신다고 하였다.

또한 뒤이어 나오는 누가복음 15장 11절에서 24절을 보면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나온다 (아가페 쉬운성경역):

11.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받을 몫의 재산을 주십시오.’ 그러자 아버지는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모든 재산을 모아서 먼 마을로 떠나 버렸다. 거기서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재산을 다 날려 버렸다.
14. 모든 것을 다 써 버렸을 때, 그 마을에 큰 흉년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가난하게 되었다.
15. 그는 그 마을에 사는 한 사람에게 가서 더부살이를 하였다. 집주인은 그를 들판으로 보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를 먹어 배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주는 사람이 없었다.
17.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 말했다. ‘내 아버지의 품꾼들에게는 양식이 풍족하여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 말해야겠다. 아버지, 저는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꾼 가운데 하나로 여기십시오.’
20. 그 아들은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 아들이 아직 먼 거리에 있는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저는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했다. ‘서둘러 가장 좋은 옷을 가져와서 아들에게 입혀라. 또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 발에 신발을 신겨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고 와서 잡아라. 우리가 함께 먹고 즐기자.
24.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즐기기 시작하였다.

이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주지 못하였던 길잃은 양이었던지 아니면 위의 탕자와 같이 이 세상을 방탕하고 마음대로 살았던지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간다면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기쁜마음으로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심과 동시에 천만금을 주고도 살수없는 천국 영생까지 주신다고 하셨다.

이런 축복이 단지 교회에 나와서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얻어진다는게 얼마나 놀랍고 큰 은혜인가? 이런 축복받는 인생의 대열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가 치뤄야할 대가는 단지 주일날 가까운 교회로 나가는 수고뿐이다.

주일 아침 무의미하게 몇시간을 보내는것과 천국에서의 영생중 어떤것이 더 갚진것인지는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인생의 수많은 나날중 이번 주일은 결심하고 가까운 교회에 나가 이전에 몰랐던 영적 여정을 새롭게 시작해 보는것은 어떨까? 이 결심이 인생 여정에 있어 가장 값진 선택이 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