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경에 나타난 우주의 나이

앞장에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우주의 창조 과정을 살펴 보았다. 그런데 천문학적으로는 우주의 나이가 137억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성경에서는 우주 만물이 창조 7일 만에 다 만들어 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사실인가?

이 문제는 신학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논쟁을 불러 왔는데 말 그대로 창세기에 기록된 7일이 현재의 7일과 같다는 설과 그것보다는 훨씬 더 긴 연대를 의미한다는 설이 제시되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시간이라는 것은 변할수 없는 불변량이며 오직 현재로부터 미래로만 흐르고 과거로는 거슬러갈수 없는 물리량으로 인식되어왔다. 시간에 대한 이런 고정 관념이 이 문제를 푸는 큰 걸림돌인데 시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있지 않으면 이 문제는 풀리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제 시간에 대한 기존의 고정 관념을 바꾸고 이 문제를 접근에 보도록 하자.

먼저 성경에서는 천지창조로 부터 현재까지 우주의 나이를 정확히 얼마로 기록하고 있는지 알아보면서 출발하자.

하나님께서는 창조 7일 동안 우주로부터 우리 인간까지 창조하셨다. 처음 창조하신 인간인 아담은 몇 살까지 살았고 그리고 그 자손들은 몇 살까지 살았는지 그 족보가 성경의 창세기 5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창 5:1)”.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자손인 노아 홍수 때까지의 시기를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합산하면 1,656년이 된다. 노아 홍수의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들이 많지만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면 노아 홍수는 지금으로부터 약 7,500년 전에 일어난 일로 추정된다. 따라서 아담이 창조된 후 노아 홍수 때 까지가 1,656년 이고 노아 홍수 때부터 지금까지가 약 7,500년이 되었으니까 성경에 언급된 우주의 나이는 창조 7일 + 1,656년 + 7,500년 으로 약 9,156년이 된다. 이것이 바로 젊은 지구 창조 과학자들이 우주의 나이가 약 6천년 내지 1만년 정도가 된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이렇듯 성경에 기록된 우주의 나이인 약 1만년과 천문학적으로 밝혀진 우주의 나이인 137억년은 비교할수조차 없는 수치이다.

이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시 한번 창세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아담 이후의 기록은 정확한 것으로 추정되며,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7,500년 전이든 75,000년 전이든 우리 우주의 나이 137억년에는 어떤 변화도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창세기에 나타난 우주의 나이가 틀렸을까, 아니면 창세기 기록 안에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들어 있을까? 아마 창세기 1 장을 주의 깊게 읽고 약간의 천문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은 추측 하였겠지만 창세기의 우주 창조 최초 7일에 그 열쇠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그 추론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하루는 지구가 한번 자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인 24시간으로 정의되며 지구가 태양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는 낮이고 태양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는 밤이다. 따라서 우리 피조물의 관점에서 본 하루가 정의되기 위해서는 먼저 지구가 있어야 되고 그리고 지구를 비추는 태양이 있어야 된다.

그림 13. 하루가 정의되기 위해서는 지구와 지구를 비추는 태양이 먼저 있어야 된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우리 지구는 창조 셋째 날에 그리고 태양은 창조 넷째 날에 창조 되었다. 이렇듯 우리 인간이 정의하는 하루의 개념이 정의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하루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따라서 창세기 창조 7일 동안의 하루는 우리 인간이 정의하는 하루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의하신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구에 살고있다 보니까 하루의 길이는 24시간이라고 의심없이 믿고 있다. 하지만 눈을 조금만 돌려 지구밖으로 나가면 하루의 길이가 달라진다. 금성의 자전주기는 243일이고 목성의 자전주기는 단지 10시간 이다. 따라서 우리가 금성에서 살았다면 하루는 243일이고 목성에서 살았다면 하루는 10시간이 된다. 이렇듯 하루의 길이는 피조물이 살고있는 행성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하루가 정의되기 위해서는 먼저 행성이 있어야 되고 그 행성을 비추는 태양이 있어야 되는데 행성과 태양이 있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루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다. 따라서 창세기 창조 7일 동안의 하루는 인간의 하루가 아니다.

그림 14. 금성(좌)에서의 하루는 243일이고 목성(우)에서의 하루는 10시간이다.

그렇다면 이제 좀더 자유로운 상상을 해보자. 과연 창조 7일 동안의 시간은 인간이 보았을때 얼마나 될까? 좀 난감한 질문 같지만 빅뱅에 의해 밝혀진 우주 창조 과정을 창세기의 창조 과정과 비교한다면 해답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빛의 창조로 대표되는 창세기 창조 첫째날은 빅뱅에 의해 빛이 창조되고 인플레이션으로 넘어가는 시기 사이 임으로 창조 첫째 날의 시간은 10-35초라고 볼 수 있다. 공간의 창조로 대표되는 창세기 둘째 날은 빅뱅의 인플레이션에 의해 공간의 크기가 1050배로 커지는데 걸린 시간과 같으므로 창조 둘째 날의 시간은 10-32초라고 볼 수 있다. 지구의 창조로 대표되는 창세기 창조 셋째 날은 지구의 나이가 46억년 이니까 우주가 창조된 날로부터 계산하면 91억년(137억년 - 46억년)이 된다. 이렇듯 창조 셋째 날 까지만 살펴보더라도 우리는 한가지 경이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 하루는 우리가 생각하는 24시간으로 정해진 하루의 개념이 아니라 아주 짧기도 하고 아주 길기도 하는 등 변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하루는 우리 인간들처럼 24시간으로 정해있지 않고 변하는 것일까? 이 문제의 해답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럼 이 추론을 가능케 하는 성경적 배경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신약 성경에 있는 베드로 후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베드로후서 3:8).”

이 구절은 기다리는 자의 조급함을 지적하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시간을 다스리신다는 사실 즉 시간을 늘일 수 있으실뿐더러 시간을 줄일 수도 있으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어떻게 시간을 가래떡처럼 늘이고 줄일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 시간의 늘임은 특수 상대성이론의 시간 팽창 방정식으로 증명된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움직이는 물체는 정지한 물체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가는데 만일 우리가 빛의 속도로 달리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면 시간이 정지되어 나이를 먹지않게 된다. 또한 우주초기에는 우주 전체가 상대론적 속도로 팽창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문학적으로 계산된 창조 첫째날과 둘째날의 시간이 그렇게 적지 않았을지도 모를일이다. 이렇듯 시간의 늘임은 상대론으로 설명이 되지만 시간의 줄임은 우리 인간의 짧은 과학 지식으로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림 15. 아인슈타인의 시간 팽창 방정식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마음대로 늘이거나 줄이실 수 있으실 뿐만 아니라 시간을 정지시킬 수도 있으시다. 구약의 여호수아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여호수아 10:13)”.

이 구절은 여호수아가 아모리족과 전쟁을 할때 일어난 사건으로 태양이 하루동안 중천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있다. 만일 이 성경 구절에 나타난 동일한 사건이 오늘 서울 하늘에서 나타난다면 얼마나 충격적일까? 그런데 이런 충격적인 일이 여호수아 시대에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시고 또한 다스리신다는 한 예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것보다도 좀 더 충격적인 일이 구약의 열왕기하에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병이 들어 금방 죽게 된 히스기야 왕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셔서 15년을 더 살게 한 표징으로 행하신 시간의 역전현상이다.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열왕기 하 20:11)”.

위에서 언급한 일영표란 아하스 왕 때 만들어진 해시계를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이 해시계의 시간을 10계단만큼의 과거로 돌리셨다는 말이다. 이 시간의 역전 현상은 ‘백 투 더 퓨쳐’ 같은 영화나 공상과학 소설 속에 나오는 것으로 시간의 정지나 줄임 보다도 더 이해하기가 힘든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대상을 마치 게임기의 조이스틱으로 빠르게도 하고 느리게도 하고 또는 정지하게 하실 수 있는 분에게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것 역시 조이스틱을 반대로 돌리는 것처럼 손쉽게 하실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관측하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이 사실들이 너무도 이해하기 힘들고 신비스러운 사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림 16. 아하스 시대의 해시계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시간을 다스리시는 이런 증거들 외에도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수많은 기적들이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기적들을 순수하게 믿고 받아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고 의문을 가진다. 그 중의 대표적인 예가 동정녀 마리아 사건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성경의 다른 것은 믿어도 처녀가 아이를 잉태한 사실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황우석 박사 사건으로 알려진 처녀 생식으로 잘 설명된다. 난자에 조그마한 전기적 충격을 가하면 정상적으로 수태된 난자처럼 세포 분화를 하는것이 처녀 생식인데 지금도 실험실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기술이다. 우리 인간도 행할수 있는 이 기술을 창조주 하나님이 보신다면 얼마나 쉬운 일이겠는가?

우리가 성경에 나타난 여러가지 기적을 보는 관점은 현재 우리의 과학 수준으로 설명이 가능하면 납득을 하고 설명이 불가능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하고 믿지않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 만능 시대라고 불리는 우리의 현재 과학 수준을 창조주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제 겨우 천지 만물이 창조되고 운행되는 원리를 조금 이해하기 시작한 걸음마 단계로 보일 것이다. 이렇듯 신화처럼 들리던 천지창조의 사건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 생각지도 못한 깊은 진리가 들어있다는걸 알수 있다. 이 사실은 성경이 지구상의 인간이 창시한 다른 종교들처럼 신화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진리의 책이라는것을 증거한다.